믿음이란 | 운영자 | 2018-05-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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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14:1-15)
진짜 믿음이란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록 하나님께서 더디게 일하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약속을 붙들고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이라는 것을 사울의 실패를 통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아버지에 비하여 그의 아들 요나단의 믿음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6절에“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요나단이 이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시기와 장소는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임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군의 수는 아군의 수보다 월등히 많았고, 블레셋의 무기는 철기로 만든 신무기들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이 열광적으로 추대했던 초대 왕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무서운 책망을 받아 지도력에 치명타를 입은 뒤였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사울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왕을 삼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요나단은 다음대 왕이 될 수도 없는 상황이 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요나단은 남들과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들과 다른 소망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첫째, 요나단이 주목한 것은 자신이 처한 불리한 조건이 아니라, 자신을 택하신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6절“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우리가 보기에 요나단의 무기와 전략과 군사는 블레셋의 무기와 전략과 군사와 비교할 때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열악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이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으로 무기를 삼았을 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쟁의 결과를 허락하셨습니다. 적군이 공포에 떨어 자중지란에 빠지고, 땅이 진동하여 혼동을 가져올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적의 편 인줄 알았던 세력들이 일제히 돌아서서 아군으로 올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크고 작은 것은 대봐야 안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참된 가치는 직접 비교해봐야 안다는 뜻입니다. 인생의 진짜 강자가 누구인지는 진짜 대봐야 압니다. 우리의 부패한 마음과 얄팍한 생각으로는 이 세상이 다 크고 강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하게 보였겠습니까?
그러나 그 십자가가 온 인류 역사를 뒤집어엎는 위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비록 적을지라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크신 분, 우주를 지으시고, 세상을 통치하시는 크신 분임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요나단은 가장 불리한 상황이 가장 위대한 역전의 기회임을 주목했습니다.
10절 “그들이 만일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12절에서 요나단은 적군이 유리한 고지에서 자신들에게 올라오라고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도리어 하나님의 승리의 신호탄이라고 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로 받아들였습니다.
요나단은 높은 바위를 손발로 기어 올라가는 거칠고 고된 상황을 최고의 전략으로 받아들입니다. 요나단은 단 둘이서 스무 명을 상대하는 것을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표징으로 받아들입니다. 최악의 순간에 절망에 빠지고, 자기중심이라는 오류에 빠진 것이 아니라, 최선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요나단은 남들이 보지 못한 것들을 보았습니다. 요나단은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많으면 자만하고 적으면 불안해 할 때에, 많고 적음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주목했습니다. 요나단은 가장 불리한 상황에서 절망이라는 끝을 보지 않고 그것을 승리의 사인으로 보았습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눈, 그것을 가리켜 성경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하루 살아가면서 육신의 눈이 아닌 믿음의 눈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며, 기가 막힌 역전의 승리를 경험하는 하루 되시길 기대합시다. 세월 지나 갈수록 더욱 굳센 믿음으로 살아가길 고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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