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택 | 정갑호 | 2018-07-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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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6:14-23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자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합니다. 악신을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악신 역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악신의 활동도 하나님의 다스림과 허용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악신으로 인해 사울은 번뇌하게 됩니다. 번뇌란 심한 정신적 고통을 뜻합니다. 고민과 걱정 염려로 인한 정신적 쇠약을 뜻하는 것이 번뇌이기는 하지만 결국 그 원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데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번뇌의 이유입니다. 보이는 것만 의지하는 인간들은 보이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주어지지 않을 때, 그리고 자신이 의도한 대로 되어지지 않을 때, 걱정과 고민에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신이 떠난 사울의 형편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울에게 신하들은 수금 잘 탈줄 아는 사람을 구해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연주하게해서 도움으로 받으라고 건의를 합니다. 이로 인해서 사울은 수금을 탈 줄 아는 사람을 구하도록 지시하고 결국 다윗이 사울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 다윗이 수금을 타면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이 떠났습니다.
수금에 이런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신하들의 의견일 뿐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가 놀라운 것은 신하들이 수금을 언급하고 마침 다윗이 그 수금을 탁월하게 연주했기 때문에 왕 앞에 자연스럽게 설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수금을 탈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신이 임한 다윗의 존재를 높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사울이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악신이 들린 상태는 고통이었습니다. 왕이면 뭐합니까? 악신으로 인해 번뇌하고 고통 받는 삶이라면 왕이라는 것도 결코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울 앞에 선 다윗은 비록 목동이었고 어린 소년이었지만 여호와의 신이 임한 자로서 사울의 악신을 떠나게 하였습니다. 과연 누가 더 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악신이 들린 상태는 그가 어떤 신분 어떤 존재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결코 행복하다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여호와의 신이 떠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절실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돈 없고 가난하게 사는 것이 비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떠나시고 나를 버리셨다는 것이 비참함입니다.
여러분 절대 교만하지 마십시오. 지금껏 우리가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비참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해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섬김으로 인해 구출 받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여전히 우리의 뜻대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아무리 우리 스스로 신자라고 자처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함께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번 선택했는데 버리실까?’라는 생각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을 믿는 자는 선택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즉 ‘선택했으니까 어떻게 살든 버리지 않으시겠지’라는 생각 자체가 이미 하나님이 떠난 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선택된 자는 선택 자체를 귀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버림받아 마땅한 나를 택하여 그리스도안에 있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에 머물기 위해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살고자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과 사울의 모습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번뇌하는 사울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처지와 같습니다. 우리 역시 온갖 고통과 걱정과 염려들에 휩싸여서 번뇌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심지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께서 주시는 평안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여러 가지 걱정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마치 다윗을 통하여 사울을 구원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러한 우리들 앞에 예수님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구원받은 백성 하나님의 영이 임한 자들에게 허락된 참 평안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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