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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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간의 묵상
출 9:22-35 정갑호 목사 202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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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 땅의 상당수의 가축들이 전염병으로 죽었고 이제 애굽 사람들의 의지할 것은 밭의 채소들뿐인데 이 우박의 재앙으로 인해 애굽 온 땅의 사람과 가축을 막론하고 밭에 있는 모든 채소를 치고 나무를 꺾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 상황이 되었다면 누구라도 굴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완악한 바로도 결국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라고 하며 이 우렛소리와 우박을 그만 그치게 하고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다시는 머물지 아니하리라”(27-28절)는 말로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로의 입에서 ‘내가 범죄하였노라’‘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는 고백이 나온다는 것은 참으로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와 같은 사람에게는 도무지 기대할 수 없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바로의 고백만 본다면 그는 하나님께 굴복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완전히 항복한 자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34절)는 말처럼 바로는 또 다시 재앙이 있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갑니다. 

그런데 바로의 범죄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을 보내겠다고 했다가 보내지 않은 불순종, 변심일까요? 물론 그것도 범죄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31,32절을 보면 우박이 내릴 당시 우박으로 인해서 이삭과 삼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쌀과 쌀보리는 아직 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었습니다. 따라서 먹을 것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바로는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후 아직 자기에게는 밀과 쌀보리가 남았다는 알게 되었고 그것에 희망을 둠으로써 마음이 변심한 것이었습니다. 아직 남은 것이 있으니 버틸 수 있고 지금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따라서 바로의 범죄는 눈에 보이는 것, 자신에게 남아 있고 존재하는 것을 힘으로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지금까지 재앙을 경험하면서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우박으로 인해서 보리와 삼이 상했다면 남은 밀과 쌀보리도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생각했어야 합니다. 언제든 하나님이 하고자 하신다면 밀과 쌀보리까지 상하게 하실 수 있음을 생각하다면 남은 밀과 쌀보리가 희망이 될 수 없음을 알았어야 합니다. 하지만 바로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보다는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에만 마음을 둡니다. 그래서 주어진 형편에 따라 수시로 마음과 생각이 변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기독교인들도 어려움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죄에 대해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이 있기 때문에 벌받는 것으로 짐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돌변하는 것을 수시로 보게 될 뿐입니다. 

만약 바로가 하나님이 누구신가? 를 알게 되고 구원을 받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될까요?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로와 같은 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진심으로 범죄 한 자라는 고백과 함께 구원될 자격이 없는 자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부르게 된다면 바로를 그렇게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 외에 달리 할 말이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바로와 같은 존재라고 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바로와 같이 보이는 것에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완악한 존재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된 것이고, 구원될 수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 십자가의 은혜가 감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고 알아가고 배우게 될 때 감사가 있고 감동이 되십니까?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을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 더 존귀한 은혜로 받아들이십니까? 그것이 곧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지내왔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를 이 은혜에 붙들어 놓기 위해 날마다 시험하시며 변심하는 나를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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