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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함이 아닌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억하라 정갑호 202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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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2:29-36


〔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32〕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33〕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34〕 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29절의 말씀을 보면 열째 재앙은 밤중에 일어난 사건이고 그 범위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 그리고 가축의 처음 난 것에까지 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삶과 죽음을 결정하시는 유일한 구별기준은 어린양의 피였습니다. 그러면 피를 뿌린 집은 그 피가 자신들을 살릴 유일한 표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일까요? 우리는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았다고 표현을 합니다. 당연한 말 아니냐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여기에는 분명이 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의 출처, 즉 믿음의 시작이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주어져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으로 알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내가 믿었다는 나의 행위에 더 큰 가치를 둡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항상 행위의 믿음으로 귀결이 됩니다. 10번째 재앙도 그들이 그 피를 문에 바른 것이 그들의 믿음이 아니냐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 행위자체를 믿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위가 과연 믿음을 말하고 그 행위의 결과가 유익한 것이라고 해서 믿음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우박의 재앙때를 보면 애굽 사람중에도 하나님께서 내리실 그 재앙을 믿어서 들에 있던 자신의 가축들과 사람을 피하게 함으로 그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들이 하나님을 믿은 결과냐 하면 이것은 신앙으로서의 믿음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 피의 재앙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를 집의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은 것을 행한 믿음의 결과였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들이 정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홍해 앞에서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을 때나 광야의 생활에서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10번째 재앙이 임할 때도 출애굽 이후에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자격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이스라엘의 본성을 모르셨겠습니까? 다 아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시고 오직 피를 기준으로 삼아 그들을 살리시기로 작정을 하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중심과 정말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느냐를 가지고 삶과 죽음을 결정하셨다면 아마 애굽인이냐 이스라엘 백성이냐와 관계없이 애굽에 거주하던 모든 장자가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보신 것이 아니라 피를 보셨기 때문에 죽음이 건너간 자들이 생긴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당했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피가 있는 그 집에는 죽음으로 인한 부르짖음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스라엘이 애굽과 달랐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피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믿는 믿음에는 내가 잘해서 내 힘으로 되어진 일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이 이루신 일입니다. 이 믿음이 여러분에게 은혜로만 남겨지기 바랍니다. 이러한 우리의 믿음 없음을 묻지 않으시고 구원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그리고 35,36절을 보면 애굽의 종이었던 이스라엘이 애굽 사람에게서 은금 패물과 의복을 받아 나옵니다. 은금 패물과 의복조차도 그들의 몫이 아니었던 것을 하나님으로 인해 받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로 밖에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우리들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의 공로로 죽음을 면하여 살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 외에 다른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는 삶을 사십니까? 아니면 내가 행한 작은 것을 기억하며 오히려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십자가 은혜를 고백하는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우리의 행함이 아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은혜가 우리의 삶에 드러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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